Road to peace
이 땅의 평화를 고대하며, 정전70주년 /2023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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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WAR, 더 이상 전쟁은 안 된다!
PEACE FIRST 평화를 위한 길을 열다 !
민족이 상생하고 공존하는 앞날을 열기 위해
평화로 가는 길을 나는 영화를 통해 찾아 나서려 한다.
지난한 세월 일제 식민지의 된 고통을 겪고
해방의 기쁨을 채 누리기도 전
강대국들이 그은 선에 의해 이 민족은 남북으로 나뉘어
동족상잔의 악다구니 처절한 전쟁을 했다.
그것을 우리는 한국전쟁이라고 부른다.
그 전쟁은 전투원의 희생보다 더 많은 민간인 학살을 발생시키는
유례를 찾기 힘든 전쟁으로 기록되었다.
심각한 죄성으로 인해 전쟁의 진실은 묻혀지고 잊혀졌고
치유되어야 할 국가적 트라우마도 고스란히 무의식 깊숙이 자리잡았다.
이 사회는 남북 대치 상황보다 더 심각하게
우리 안의 이념과 신념 차이로 갈등과 대립의 진통을 계속하고 있다.
나는 우리 사회의 상생과 공존을 위해 트라우마의 근원인 한국전쟁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중에 가장 핵심인 민간인학살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돌아보지 않는다면 상처의 치유도 없고 미래도 없기 때문이다.
전 국토에 빼곡히 뿌린 젊은 군인들의 피와
억울하고 무고하게 죽어 간 민간인들의 넋을 외면하기에
70년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이제는 진심으로 위로해야 할 때가 왔다.
죽음 앞에 이념과 신념을 내려놓고 함께 울 때가 왔다.
NO WAR
더 이상 전쟁은 안 된다.
민족이 상생하고 공존하는 앞날을 열기 위해
평화로 가는 길을 나는 영화를 통해 찾아 나서려 한다.
PEACE FIRST
이 작업의 열매가 평화의 마음으로 맺어지길 간절히 소망한다.
Value and identity of MOVIE
영화로 찾아 나서는 평화와 민족 상생의 길
영화가 추구하는 바
focus > 지향점 및 정체성
FOCUS
영화의 지향점
민족 평화를 위한 길을 영화로 찾아나서다.
한국전쟁 l 승패를 가르지 못한
2015년 캐나다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나는 통일에 관한 영화를 계획했다.
통일은 우리 민족의 집단 콤플렉스와 소모적 이데올로기 싸움을 종식시킬 유일한 출구이기 때문이다.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관계와 남북 관계를 두루 극복하는 것 이상으로 트라우마로 상처 난 우리 내면의 가치관을 건강하게 회복시켜야 한다.
우리는 고난의 근대사를 통해 두가지 트라우마가 생겼다.
하나는 일제의 36년 식민지배 트라우마이고, 하나는 동족 상잔의 한국전쟁 트라우마다.
그 중에 북한과 함께 이루어야 하는 통일을 위해 한국 전쟁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은 난제다.
왜냐하면 북한은 관계를 끊을 수 없는 동족이며,
여전히 철조망 사이에서 대치하는 주적이며,
남북 간의 갈등은 차치하고 한국 사회마저 남남 갈등으로 분열케 하는 살아있는 원인 제공자이기 때문이다.
해방 직후 한반도는 외세에 의한 타의적 분단의 충격에 이어
일제 식민지 36년 굴욕적 체험이 채 씻기지 않은 상태에서 미군정 지배와 신탁통치의 압박으로 독립국가의 꿈이 좌절되었다.
한국 전쟁은 좌절의 분노와 남북 각자 체제의 통일국가 건설에 대한 열망이 폭발하며 충돌한 전쟁이었다.
전쟁은 남북을 넘어 국제적 열전으로 확장되었다.
좁은 국토가 터질세라 몰려든 전세계 전투원들의 전장터가 된 한반도는 초토화되었고
전투 군인들보다 민간인 피해가 더 많이 발생한 사상 초유의 전쟁으로 비화되었다.
그리고 끝내 승패를 가리지 못한 채 한국 전쟁은
‘일시적으로 군사 행동을 중지한다’는 뜻의 정전이라는 애매한 이름으로 종결되었다.
그리고 70년, 정전이 이렇게 긴 세월 갈 지 아무도 몰랐다.
나는 그렇게 지리한 코로나 1년의 시간을 도서관의 백 권 책에 코를 박고 해방 전후
한국사와 한국 전쟁사 리서치에 혼신의 힘을 다 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민간인 학살 l 국가 폭력에 의한
1년간의 리서치와 웹 서핑은 이 사건 이야기를 만나기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
충격으로 만나게 된 것은 민간인 학살 사건이었다.
그것은 나를 끝 모를 수렁에 빠뜨렸고 나는 다시 1년의 지리한 시간을 억울하고 무고한 죽음들을 만났다.
그들은 현재의 삶처럼 살아나 나를 짓누르고 나에게 울부짖는 것 같았다.
한국 현대사는 살해 행위로 점철되었다.
1945년 해방 후 혼란기는 송진우, 여운형, 장덕수, 김구 등 정적을 제거하던 개별적 암살의 시대였다.
그것이 단독 정부가 세워지던 1948년 시점부터 제주4.3사건, 여순사건 등의 점차 대담해진 집단 살해 행위로 발전했다.
마침내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남과 북은 서로를 향한 증오와 살기로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본격적인 민간인 집단 학살을 자행함으로 살해 행위는 정점으로 치닫았다.
국가가 서기 위해선 불가피한 국가적 폭력이 개입될 수도 있고 국민의 희생과 무고하고 억울한 죽음이 있을 수 있다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죽음의 진실이 왜곡되고 은폐되는 것을 용인하고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끔찍했던 민간인 학살은 전쟁 종료 이후에도 집권자들과 정권의 철저한 입막음으로
대중의 무관심과 피해자들의 침묵 속에 깊게 묻혀 있다가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40년 만에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남쪽에서의 보도연맹원 학살 사건은 단군 이래 최대의 동족 살해 사건이었다.
인민군 점령기에 부역 행위자들에 대한 무차별 학살이 일어났고 특히 영호남의 산간 오지 주민들은 인민군과
빨치산에게 협력했다는 의심만으로 군경에 의해 살해 당했다.
한국전쟁의 시대는 독선과 광기의 시대였고 무법과 멸절의 시대였다.
한국 전쟁은 좁은 국토에서 전선이 수없이 뒤바뀌는 내전이었기에 남쪽의 국민이 인민군이 되고,
북쪽의 국민이 국군이 되는 혼돈의 전투 상황에서 보복과 재보복이 반복되는 학살이 자행되었다.
전쟁은 국가가 일으켰지만 국민은 피난을 갔다고 적으로 몰려 죽었고 피난을 못 갔다고 부역자로 몰려 죽었다.
민간인들은 위협적인 적으로 간주되었고 정식 재판 없이 혐의만으로 무고하고 억울하게 학살 당했다.
이것은 GENOCIDE 제노사이드 즉 남북 모두가 가해자요 피해자가 된 아비규환의 집단학살이었다.
통일보다 평화 l 전쟁이 아닌
남북이 전쟁을 중지하기로 한 정전협정이 70년이나 지났다. 세월만큼 남북은 이질적인 체제가 더욱 굳어졌다.
북한은 핵 보유국이 되었고 세계는 군사적 경쟁을 넘어 경제적 전쟁 시대인 신냉전시대에 돌입했다.
남북 문제는 여전히 남북 스스로 풀 수 없는 국제적인 이해 관계에 놓인 상황에서 통일이란 단어의 뜻이 무색한 시대가 되었다.
북한은 한번도 민주주의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이것은 통일 한국의 가장 위험한 요소다.
그러므로 통일 한반도의 미래는 남한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과 함께 결정한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우선 되어야 한다.
우리는 싫든 좋든 북한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통일 예측 불가능의 시대를 살게 된 지금은 평화통일이란 말에서 평화와 통일을 떼어서 생각해야 한다.
설사 통일이 안 되더라도 평화가 보장된다면 남북은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다.
평화만이 살 길이다라는 평화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신념이 우리 공동체 안에 굳건하게 자리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통일에 대한 사고를 수정해야 한다. 우리는 통일하면 남쪽 주도의 흡수 통일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통일은 개방적인 사회가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폐쇄적인 사회가 스스로 먼저 문을 열어야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독일의 통일 역사에서 배울 수 있다. 독일의 통일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흡수 통일이 아니었다.
동독에서 1989년 10월9일 동독혁명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달 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수 있었다.
통일이란 고질적인 두 체제가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이다. 만나기 전에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을 가슴에 각인해야 한다.
우리가 절대로 다시 경험해서는 안 되는 것은 전쟁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남북의 주민들이 평화적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평화는 지금 한반도에서 가장 중요한 명제요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과제다.
우리는 꿈을 꾸며 세계를 향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한반도의 통일을 통해 동북아의 평화가 실현되며, 동북아의 평화를 통해 세계 평화가 실현된다는 사실을.
아름다운 나라 l 역설적인
나는 민간인 학살 사건을 만났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으며 몇 십년 동안 은폐될 수 있었을까?
몇 달을 실제적 악몽을 꾸며 죽음의 유사 경험을 했다. 두려움이 용기를 가렸다.
그때 나는 한 글귀와 마주했다. “양심적인 사람 단 한 사람만 있다면 무고하고 억울한 죽음의 진실이 규명될 수 있다.
” 진실이 밝혀질 때는 직면하는 누군가가 있었다. 내 양심이 나에게 피할 수 없다면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한국 전쟁을 다시 정의했다. 한국전쟁은 묻혀진 전쟁이라고.
시신이 떼로 매장되듯이 묻혀진 전쟁이지만 나는 이것을 무더기로 엉켜진 유골을 하나 하나 조심스레 발굴해 내듯이 파낸 전쟁으로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했다.
광란과 비정의 시간으로부터 70년이 흘렀다. 민간인 학살은 잊는다고 잊혀질 사건도 묻는다고 묻혀질 사건도 아니다.
가려지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피해의 잔재가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며 통곡의 피눈물이 한반도 곳곳에 적셔져 있기 때문이다.
처리되지 않은 범죄는 미래로 가는 길을 붙잡는 덫과 같다. 그것이 국가적 폭력에 의한 범죄라면 더 더욱 더 이상 묻어두고 없었던 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군사 대결만 있었다면 남북관계는 치유될 수 있고 공식적 협상으로 통일에 이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신적, 정서적 뿌리 깊은 곳에 내면화된 민간인 학살의 비극이 치유되지 않는다면 한국 전쟁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없다.
따라서 한반도에 있어 평화 통일로 가기 전에 반드시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민간인 학살 문제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잠재 의식 속 깊은 곳에 가장 근본적인 증오와 혐오로 자리잡고 있다.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 비로소 남남 갈등이 해소되는 문이 열리고 남북이 대화의 자리에 앉을 수 있는 문이 열리고 통일로 가는 비상구가 열릴 것이다.
영화 ‘아름다운 나라’는 역설적인 제목이다. 처참하고 참담한 과거의 어둡고 잊혀지고 감추어진 역사를 드러내는 작업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둠의 한 복판에서 걸어 나와 빛으로 향하는 화해와 평화의 열매를 맺는 선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역사와 화해하고 나의 내면과 화해하고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가는 평화를 향한 첫 회복의 걸음이 되는 아름다운 작업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IDENTITY
영화의 정체성
영화가 추구하는 바
경고문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전쟁은 모두가 죽는 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며 평화만이 살 길이 된다고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를 대한민국의 관객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관객들도 수용하게 될 것이다.
정정보도
한국 전쟁의 실상과 그 와중에 일어난 민간인 학살에 대해 가감없이 묘사하며
좌와 우에 희생당한 양쪽의 목소리를 최대한 공평하고 공정하게 담는다.
그럴 때 그 어떤 가치도 생명의 존엄성을 능가할 수 없다는 인식에 다다를 것이다.
사실주의
역사는 왜곡되기 쉽다. 북은 북의 체제 유지를 위한 역사를 쓰고 , 남은 남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역사를 쓴다.
그래서 진실은 늘 책의 행간에서 찾아진다.
그러나 이젠 이데올로기와 진영과 체제의 이익을 떠나 사실을 새롭게 기록할 때다.
이 영화는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에 눈뜨게 하고 억울하고 무고하게 죽어간 생명들에게 새 생명을 부여하게 될 것이다.
레퀴엠(진혼곡)
자유민주주의 진영에 서서 희생당한 국군과 경찰 우익 인사들에 대한 위로는 계속해서 더해져야 한다.
동시에 전투와 상관없이 희생 당한 민간인들과 좌익이라는 혐의 만으로
희생당한 죽음들과 무엇보다 수십년 피눈물로 한과 그리움을 품고 살아온
그 후손들에 대한 진혼곡도 노래 불러져야 한다.
더 나아가 진혼곡은 다른 형태이지만 동질의 슬픔을 가슴에 묻어두었던 수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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